지난여름, 강원도 내륙의 굽이진 길을 따라 정처 없는 여정을 떠났다.
영월을 지나 정선의 서늘한 바람을 통과하고, 횡성 너머 화천으로 향하는 길은 초록의 집요함으로 가득했다.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와 여독이 어깨를 짓누를 때쯤, 비릿한 땀 냄새를 씻고 허기를 달래줄 무언가가 간절해졌다.
화천 사내면의 조용한 문화마을 길목, 투박하지만 정겨운 글씨로 적힌 '삼호가든'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외관은 없었으나, 오히려 그 단출함이 발길을 끌었다.

식당 내부는 기름기 하나 없이 닦인 바닥과 정돈된 수저통에서 주인장의 고집스러운 청결함을 엿볼 수 있었다.
화려한 장식 대신 낡은 벽걸이 선풍기가 회전하며 내는 낮은 소음이 공간의 여백을 채운다.
이곳의 주인공은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깨죽 삼계탕'이다.
흔한 맑은 국물의 삼계탕이 아니라, 들깨를 아낌없이 갈아 넣어 죽처럼 걸쭉하게 끓여내는 방식이다.

잠시 후 내 앞에 놓인 뚝배기에서는 들깨 특유의 묵직한 향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국물을 한 수저 떠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뼛속까지 우러난 진국의 무게가 동시에 퍼진다.
야들야들하게 익은 닭고기는 젓가락만 대도 결대로 사르르 녹아내린다.
닭의 품속에 숨어 있던 찹쌀은 들깨 국물을 머금어 묵직한 포근함으로 속을 달래준다.
짭조름한 감칠맛이 고소함을 한층 돋우니, 정신없이 먹다 보면 어느덧 뚝배기 바닥이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몸의 기운을 밑바닥부터 끌어올리는 농밀한 에너지에 가깝다.

몸무게가 20kg이나 빠지고 침대에 누워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50세 이전, 인생의 1막이 불같이 뜨거운 성취를 향한 달음박질이었다면,
지금의 인생 2막은 이 깨죽 삼계탕처럼 오래 우려낸 진국 같은 온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실 이곳은 찾아오기 참 멀다. 강원도 화천의 외진 길을 한참이나 달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수반된다.
그러나 그 먼 거리조차 이 진한 국물 맛을 완성하는 마지막 양념이 된다.

식당 문을 나서니 화천의 바람이 아까보다 훨씬 다정하게 느껴졌다.
잘 먹었다는 말 대신, 몸이 먼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한 끼였다. 다시 삶이 휘청거릴 때,
나는 다시 이 멀고도 고소한 길을 찾아올 것 같다.
삼호가든: 강원 화천군 사내면 문화마을 1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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